
20년이 넘은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OTT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잔잔한 감동과 깊은 여운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를 세 가지 핵심 주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물질만능주의의 위험성을 여러 장면을 통해 경고합니다. 영화 초반 치히로의 부모님이 주인 없는 식당에서 "돈이 있으니 나중에 계산하면 된다"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는 장면은 성인이 되어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어린 시절 마트에서 계산 전 김밥을 먹으며 느꼈던 양심의 가책처럼, 분명 정직하게 계산할 의도였던 행동조차도 물질만능주의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의 모습은 이러한 경고를 극명하게 표현한 상징적 장치입니다.
가오나시라는 캐릭터는 물질만능주의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냅니다.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이 요괴는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황금을 제공합니다. 온천의 직원들이 금을 받기 위해 가오나시를 떠받들고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물질 숭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치히로는 단호하게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순수한 호의만으로 손을 내밉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익명성의 가면 뒤에서 돈으로 환심을 사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유바바가 쌓여있는 사금을 보느라 자신의 아이가 바뀐 줄도 모르는 장면은 물질만능주의의 어두운 면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쿠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도 잃은 줄은 모른다"고 비판하는 이 장면은 현대인들이 물질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극에 노출되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보는 눈의 중요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외적인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치히로는 작품 전반에 걸쳐 이러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오물신이라는 오명을 쓴 강의 신이 본래의 모습을 찾도록 도움을 주고, 용의 모습인 하쿠를 바로 알아보며, 수많은 돼지 무리 속에서도 부모님의 유무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들에게 걸린 마법을 풉니다.
반면 유바바는 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얼굴 3형제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녀가 집중하던 사금 또한 진짜 금이 아닌 흙덩이였습니다. 물질에 눈이 멀어 외적인 것으로만 판단한 나머지 유바바는 소중한 것을 둘 다 잃은 셈입니다. 이는 겉모습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해석됩니다.
'냄새가 나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치히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온천의 직원들이 나중에는 그녀의 귀환을 함께 축하해주는 장면도 의미심장합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똑같이 존중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푸는 치히로의 진심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는 본질을 보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가 결국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물욕에 빠지지 않으며,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삶을 살 것을 주문합니다. 잔잔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은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OTT 시대에도 이 영화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의 가치와 기억의 의미
영화의 엔딩 장면은 경험과 기억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하쿠가 치히로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왔던 길로 가라"고 알려주는 장면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확인하려다 영영 그녀를 잃었듯이, 치히로도 하쿠의 조언을 어겼다면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부모님과 다시 헤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온 후 치히로가 뒤를 돌아보며 한참 동안 서 있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모험을 한 치히로는 자신의 경험이 꿈인지 생시인지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함께 만들어준 머리끈은 여전히 머리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치히로가 했던 경험과 사귄 친구들이 그녀 안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하쿠가 자신의 진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치히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던 것 역시 그들이 서로 만났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경험한 것이든 현실에서 경험한 것이든, '경험'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경험이 의미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려서부터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른 여운을 남기며, 각자의 경험과 성장 단계에 따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 영화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은 사람들에게 자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20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물질만능주의 비판, 본질을 보는 눈의 중요성, 경험의 가치라는 보편적 주제를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긴 여운과 사회적 비판을 통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작품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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