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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블랙코미디, 런닝타임, 관람 포인트)

by 롤리로그 2026. 1. 31.

어쩔 수가 없다 포스터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2025년 9월 극장 개봉 후 최근 OTT 플랫폼에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도날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도끼)'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중산층의 몰락과 생존을 위한 극단적 선택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냅니다. 이병헌, 손예진을 비롯한 대배우들의 연기 대결과 박찬욱 특유의 영상미가 어우러진 이 영화는 개봉 당시부터 극명한 호불호를 낳으며 관객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박찬욱 감독표 블랙코미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오래전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었던 작품입니다. 영화는 제지회사 중역 만수(이병헌)가 예상치 못한 해고를 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실현한 중산층의 꿈인 근교의 저택,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 마냥 행복한 부인,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까지 모든 것이 마치 존재조차 한 적 없듯 산산조각이 납니다.
재취업 시장에서 만수는 계속해서 좌절을 맛봅니다. 삼 개월이면 충분히 새 직장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모든 면접에서 낙방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같은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의 약력이 고졸인 그에 비해 너무 출중한 것입니다. 결국 만수는 면접을 빗대어 "다 죽이고 돌아오라"는 아내 미리(손예진)의 말을 문자 그대로 실행하기로 결심합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생각할 필요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로 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과장된 코미디적 상황극을 예고합니다. 집 정원에서 바비큐를 굽고 있는 만수 위로 펼쳐진 하늘은 마치 '트루먼 쇼'의 그것처럼 인공적이고 만화적입니다. 하늘색 종이 위에 솜으로 만든 구름을 붙여 놓은 것 같은 이 연출은 앞으로 펼쳐질 '잔혹 동화'를 암시합니다. 자본주의와 기술주의의 비판을 담고 있는 이 블랙코미디는 '박쥐', '친절한 금자씨'를 포함한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전반과 전면에 슬랩스틱과 코미디를 배치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됩니다.

박찬욱 연출의 명암과 러닝타임 문제

148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논란거리입니다. 상당 부분이 과도한 상황극과 코미디에 할애되면서 완성도에 큰 결점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만수가 첫 번째 경쟁자 구범모(이성민)를 제거하기 위해 범모와 그의 아내 아라(염혜란)와 벌이는 육탄전은 마치 레슬링 경기를 중계하듯 긴 시퀀스로 그려집니다. 만수가 미리의 댄스 파티에서 화가 난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춤을 추는 장면 역시 비슷한 맥락의 슬랩스틱이 중심이 되는 상황극입니다.
크게 웃기지 않는 상황극과 슬랩스틱을 너무 길게 이어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들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에 집중하되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약간의 코미디를 "뿌리는" 식의 전법을 구사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장기에 있어 함량 조절을 잘 못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즐길만한 포인트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유현목 감독 등을 포함한 박찬욱 감독이 예찬하는 거장들의 레퍼런스로 가득합니다. 만수가 직장을 잃고 나서 얻게 되는 치통은 '오발탄'에서 철호(김진규)가 생활고와 치통에 시달리는 설정을 연상시킵니다. 그가 시조(차승원)의 시체를 차 트렁크에 넣어둔 채 예상치 못한 이유로 경찰서로 가게 되는 상황은 히치콕의 '로프'에서 두 친구가 시체를 넣어둔 책장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파티를 하는 대목을 변주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영화사적 오마주들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대배우들의 연기 차력쇼와 관람 포인트

이병헌 주연의 이 작품은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는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배우의 연기 부분에서 비평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배우들의 연기력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박찬욱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절대로 목도할 수 없는 대배우들의 세기의 슬랩스틱은 그 자체로 관람 포인트입니다.
이병헌은 중산층 가장에서 연쇄살인마로 변모하는 만수 캐릭터를 만화적 캐리커처로 소화합니다. 손예진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내면의 불안을 감추고 있는 미리 역을 섬세하게 연기합니다. 이성민과 염혜란은 첫 번째 희생자 부부로서 육탄전 시퀀스에서 코미디와 긴장감을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차승원 역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시조 역할로 영화에 활력을 더합니다.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배우들의 연기 차력쇼는 148분의 러닝타임을 버티게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각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가 처한 극단적 상황을 과장되면서도 설득력 있게 표현해냅니다. 특히 이병헌의 경우, 평범한 가장에서 점차 광기로 물들어가는 과정을 세밀한 표정 연기와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자기합리화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공포, 죄책감, 그리고 점차 무뎌지는 감각까지 복합적인 감정선을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개봉 당시 평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은 이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올드보이'나 '아가씨' 같은 작품들의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과도한 코미디가 실망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대배우들의 파격적인 연기를 즐긴 관객들은 이 영화를 신선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어쩔수가없다'는 기대와 아쉬움이 명백하게 공존하는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관객의 확인이 마땅한 영화입니다. OTT 플랫폼 공개로 극장에서 놓친 관객들도 이제 집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표방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생존 경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으며, 대배우들의 연기 향연은 그 자체로 충분한 관람 가치를 제공합니다. 호불호가 뚜렷한 만큼 직접 감상하고 판단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출처]
영화 리뷰: https://www.arte.co.kr/stage/review/article/9769